빛으로 그린 세상

소달구지 타고 “까르르르”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소달구지 타고 “까르르르”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09:14

- 경기 용인 한터조랑말농장

 

덜컹덜컹 흔들리는 소달구지를 타고 가면서 까르르르 아이들이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소가 걸을 때마다 ‘똥꼬’가 보인다나요. 시골길에 핀 개나리도 활짝 웃는 눈부신 봄날, 소달구지 덜컹거리고 올챙이 꼬물거리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신록이 싱그러운 5월의 봄을 닮아갑니다.

# 생동하는 봄을 닮은 아이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입니다. 민들레며 냉이 쑥 등 온갖 풀들이 길섶을 푸르게 뒤덮고 나무마다 새끼손톱만한 신록이 돋아 있습니다. 양지바른 비탈 밭에는 농부들이 무언가를 심느라 분주합니다. 그야말로 만물이 생동하는 봄입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나 달렸을까요. 공기 좋고 한적한 시골 동네에 자리 잡은 농장에 도착했습니다. 널찍한 우리에 염소, 산양, 강아지, 토끼들이 뛰놀고, 마구간에는 조랑말들이 기웃거립니다. 그 앞에서 어린이들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동물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생동하는 봄을 닮아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제 선생님이랑 함께 동물들 먹이도 주고 조랑말이랑 소달구지도 타면서 재미있는 체험을 많이 할 거에요. 자, 따라오세요!” 드디어 오늘의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난 아이들이 김가영 선생님의 뒤따르고 그 뒤를 부모들이 따라갑니다. 곤충 체험장에서 민달팽이도 만지고 귀뚤귀뚤 귀뚜라미도 관찰합니다. 농기구 체험장에서는 어린이에 맞게 만들어진 지게를 지고 뒤뚱뒤뚱 걸어봅니다. 맷돌도 돌려보고 짚신도 신어보고, 한 남자 어린이는 요강을 들고 신기한 듯 요리조리 살펴봅니다. 그릇같이 생긴 이곳에 소변을 봤다는 게 영 믿어지지가 않는 모양입니다.

 

# 조랑말 타고 말먹이 주고
한 줄로 서서 조랑말을 탈 차례입니다. 조련사 할아버지가 고삐를 잡고 가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타도 안전합니다. 5살 병재는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표정으로 기다리다가 막상 말을 타더니 얼굴이 환해집니다. 말 등에 앉아서 또각또각 걸어가는 말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과연 어땠을까요. 말이 낯설고 서먹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지, 동물 먹이 줄 시간이 되자 병재는 제일 먼저 자기를 태워준 말을 찾아 당근을 줍니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당근을 주는 손에서 먹이를 받아먹는 말의 움직임에서 서로를 느끼며 마음을 주고받는 듯합니다.

‘말아, 나 태워주느라 힘들었지? 고마워, 그리고 맛있는 당근 많이 먹어.’, ‘너는 가벼워서 별로 힘 안들었어, 그리고 당근 줘서 고마워.’ 마치 이렇게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서로의 눈빛은 진지했습니다. 병재 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서 신이 났습니다. 말에게는 길게 썬 당근을 주고 소에게는 마른 풀을 줍니다. 먹이를 먹으려고 말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안달을 냅니다. 염소들은 길게 자른 무를 서로 먹으려고 다투지요. 골고루 공평하게 먹이를 주는 아이도 있고, 어린 동물들에게 먹이를 더 주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3학년 예원이는 제일 못 얻어먹은 어린 염소에게 먹이를 주려고 애를 씁니다.

# 소달구지 덜컹대며
다음은 소달구지가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소가 끄는 마차를 타는 건 아이들도 어른들도 처음이지요. 초등 4학년 세연과 3학년 성연 그리고 5살 병재를 둔 세 아이의 아빠 김성민씨네 가족이 먼저 올라탑니다. 개나리꽃이 만개한 흙길을 소달구지를 타고 돌아오는 다섯 식구의 표정이 꽃만큼이나 화사합니다. 더 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저도 소달구지를 타보았습니다. 먼지 풀풀 이는 흙길을 덜컹덜컹 흔들리며 가는 동안 시골의 정취도 담뿍 느낄 수 있었고, 소가 꼬리를 흔들며 걸을 때마다 ‘똥꼬’가 보인다며 터뜨리는 아이들 웃음보에 즐거움도 한가득 이었습니다.

“체험농장을 연지 13년째인데요, 아이들이나 가족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 제일 보람을 느끼지요.” 농장 대표 김용덕씨(55)가 아이들이 소달구지 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용인에서 젖소 목장만 15년째 해오던 김 대표가 처음 농장을 시작했을 때는 우리나라에 체험농장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기였지요. 우수양축가로 선발되어 일본에 연수 갔을 때 보았던 그곳의 체험농장에 그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젖소를 처분하고 조랑말 네 마리를 사서 첫출발을 하였지요.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지금은 체험농장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체험학습을 위해 찾아오고 있으며 또한 가족 나들이 체험 농장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자연과 하나 되는 아이들
텃밭 옆에 흐르는 작은 도랑으로 아이들이 몰려갑니다. 그곳으로 가보니 꼬물꼬물한 올챙이들의 세상입니다. 그 귀하다는 도룡농알도 많습니다. 손가락 굵기의 기다란 젤리 같은 것이 동그랗게 말려있는 데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알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손으로 물을 떠서 올챙이를 잡아 관찰하기도 하고 김대표 아저씨가 몽글몽글한 도룡농 알주머니를 건져 보여주기도 합니다. 도룡농알 속에 까만 눈들이 아이들을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텃밭으로 가서 감자를 심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감자를 심으며 성연이는 감자 캘 때 꼭 오자며 미리부터 성화입니다. 집에 가져갈 작은 화분에 아이비까지 심으면 체험은 모두 끝이 나고 이제는 자유시간입니다.

“엄마, 또 오자!!”, “가기 싫어요, 많이 많이 놀다가요~” 아쉬운 아이들이 다시 동물 우리 앞으로 뛰어갑니다. 아이들도 동물들도 이제는 한결 자연스럽고 친해진 모습입니다. 소달구지를 태워준 소를 쓰다듬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먹이를 주면서 조랑말과 찌릿찌릿 눈으로 마음을 주고받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도룡농알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감자를 심으며 무럭무럭 잘 자라길 기원하는 아이들은 봄의 신록을 닮았습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에 살던 아이들은 오늘 하루 소달구지 덜컹거리고 올챙이 가득한 도랑이 흐르는 이곳에서 자연을 닮은 마음을 무럭무럭 키워갑니다. 자연은 늘 우리의 마음 속 고향이라는 것을 그렇게 몸으로 배워갑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