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비오는 날, 도심 숲의 속삭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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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도심 숲의 속삭임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4. 07:51

- 서울시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

비 내리는 숲은 한적하고 고요하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나무도 풀밭도 곳곳에 놓인 벤치도 비에 젖어있다. 풀잎마다 물방울이 영롱하게 빛나고 군데군데 웅덩이에 고인 물 위에는 푸른 잎으로 가득 찬 하늘이 비춰 보인다. 빌딩과 도로에 둘러싸여 고립된 숲이지만 비오는 날, 숲은 또 다른 얼굴로 싱그러운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 비 내리는 양재 시민의 숲을 찾은 길이다.

 

양재 시민의 숲은 말 그대로 도심에 시민의 숲을 만들기 위하여 1986년에 조성된 공원숲이다. 서울숲이 문을 열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큰 공원숲이었으며, 면적 7만8천 평의 대부분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간 1,636,000명, 일평균 4,100명이 찾는다는 통계상의 수치가 아니더라도 양재 시민의 숲은 탁한 공기와 일상에 지친 서울시민에게 휴식과 건강을 제공하는 안식처의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물이 불은 여의천을 지나 시민의 숲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숲 냄새가 가득하다. 한여름 울창한 숲이 드리우는 시원한 그늘도 좋지만, 살아있는 숲의 향기를 느끼려면 역시 비오는 날이 제격이다. 소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단풍나무, 잣나무 등이 빽빽한 숲에는 비오는 날 특유의 숲의 생기가 전해진다. 잡목이 없이 드문드문 심어진 나무들이 하늘을 가득 가리며 울창한 숲을 이루는 모양은 간벌을 하지 않아 잡목이 뒤엉킨 자연림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비에 젖은 채 제 몸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튼실한 나무들이 몸도 마음도 빗물에 씻은 듯 정갈해 보인다.

숲에는 실내외테니스장, 운동장, 놀이터, 맨발공원, 자연학습장, 윤봉길 기념관 등이 있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인적이 뜸한 공원은 동물들 차지이다. 알록달록 칠을 한 어린이 놀이터에는 어린이들 대신 참새들이 소풍을 온 모양이다. 매점 앞 쓰레기통 위에서는 청설모가 먹이를 먹느라 열심이다. 사람이 와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꽤나 적응한 모양으로 보인다. 비에 흠뻑 젖은 채 공원을 배회하는 비둘기들, 엄마와 함께 날기 연습을 하는 어린 까치들까지 그들은 공원의 또 다른 주인들이었다.

 열심히 조깅을 하는 중년부인,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는 직장인들, 벤치를 차지하고 자기 집 마루에서처럼 편안히 신문을 보는 아저씨 등, 그들에게 있어 숲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생활의 일부로 보인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근사하고 멋지게 꾸며놓은 그런 거창한 곳은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으로 그들의 곁에 항상 존재하는 숲이야말로 시민의 편안한 숲인 것이다. 또한 물과 공기와 같이 그 존재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찻소리와 함께 간간히 새소리만 들려오던 조용한 공원 숲에 난데없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떻게 들으면 “맹~ 맹~”하는 것 같고 어떻게 들으면 “꽁~ 꽁~”하는 듯하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물웅덩이에서 맹꽁이들이 서로 짝짓기를 하느라 난리이다. 얼마 만에 보는 맹꽁이인가. 옛날에는 흔하디 흔했지만 지금은 서식지 파괴로 급격히 줄어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2급으로 분류하여 보호하고 있는 맹꽁이가 아니던가.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려고 우렁차게 울어대더니 드디어 짝짓기에 성공했다. 시민의 숲 한쪽에서는 맹꽁이들이 그렇게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가고 있었다.

비 내리던 평일, 숲의 주인공이 이곳에 사는 동물이었다면, 주말에 다시 찾은 양재숲의 주인공은 단연 아이들이다. 오락가락하는 장맛비에도 아랑곳없이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로 숲은 활기가 넘친다. 이슬이 영롱한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아들고 좋아하는 아이, 연못 옆을 흐르는 계류에서 아빠와 함께 무언가를 잡느라고 열중하는 아이들, 온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하나씩 타고 산책길을 달리는 아이들, 모두 숲에서 볼 수 있는 흐뭇한 풍경들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뛰놀던 산책길에는 깊은 산 속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던 청딱따구리들이 종종거린다.

조성된 지 20년이 넘은 양재숲은 이제 청년 숲이다. 아름드리 고목은 없지만 잘 관리된 숲에는 튼실한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고, 청설모, 다람쥐도 보인다. 전봇대나 아파트 베란다 밑에 둥지를 틀던 새들도 돌아왔다. 개구리와 맹꽁이 같은 양서류도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그들 모두가 숲의 주인인 것이다. 그리고 숲을 찾는 사람들도 숲의 일부가 된다.  양재천 너머 신기루처럼 들어선 마천루가 도시를 내려 본다. 공원이 조성된 지 20년동안 공원을 둘러싼 도로에는 차들이 더 빼곡하고 빌딩은 점점 높아졌지만, 그럴수록 도시인들에게 숲은 더욱 소중한 존재임을 양재숲은 절실히 보여준다.

찾아가는 길
서울 시민들의 편안한 숲, 양재 시민의 숲에 가려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양재’역에서 성남방면(7번 출구)으로 나와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면 홈페이지 http://parks.seoul.go.kr을 방문하거나, 공원관리소(02-575-3895)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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