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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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고향산책

바다위의 소달구지 행렬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15:57

충남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소 밭갈이와 소달구지가 무형 문화재 만큼이나 보기 드물어진 요즘, 아직도 소달구지를 이용하여 살아가는 어촌 마을이 있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웅도. 이곳에서는 썰물이 되면 먼 갯벌에서 조개 등을 캐어 소달구지에 가득 싣고 온다. 세계가 하루 생활권으로 접어든 21세기에, 기계 대신 느릿느릿한 소달구지를 이용하며 살아가는 소달구지 어촌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고 정겹다.

웅도는 충남 서산시와 태안군 사이의 바다인 가로림만 동쪽에 들어 앉아있다. 웅도는 하루에 두 번씩 6시간마다 육지가 됐다가 다시 섬이 되는 곳이다. 갯벌위로 놓여있는 폭 3m, 길이 2백50m의 시멘트길이 썰물 때마다 웅도를 육지로 이어준다.  바닷길이 열리는 곳으로는 경기도 화성의 제부도가 유명하다지만 웅도 바닷길은 그보다 더 운치가 있다. 웅도리(웅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웅도에는 55가구 19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마을에는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다. 갯벌에는 탁 트인 해안에 바닷게들이 육지사람을 신기한 듯 곁눈질하며 쫓아오고 석화(굴)와 바지락도 지천에 널려있다. 낙지구멍도 곳곳에 보인다. 마을에서 3km 떨어진 갯벌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어장이 있다.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함께 채취한 갯것들을 공동으로 판매하고 수익도 공동분배한다.

 

열흘만에 바닷길이 열려 일을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고 웅도를 찾아 나선 새벽, 날씨가 고약했다. 사람을 날려 버릴 듯한 비바람에 과연 갯 작업이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깜깜한 바닷가. 사람 모습을 기다린 지 한 시간 여만에 느릿느릿한 우마차의 삐그덕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십 여대의 우마차행렬이 꼬리를 물고 바닷가에 나타났다.

″날도 구질구질 한데 새벽에 먼 길 오니라고 고생이 많아겠시유.″

미리 연락을 받은 조산호(56)이장이 우마차에서 내려서 인사말을 건넨다.

″오랜만에 물길이 열려 구진 날씨에도 주민들이 많이 나왔시유″.

주민들은 세찬 비바람을 막기 위해 두툼한 옷을 입고 그 위에 파란색과 노란색의 비옷을 걸쳤다. 이장과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마을주민의 모습이 저만치 멀어져 간다. 무릎까지 오는 장화 한 켤레를 던지면서 이장도 서둘러 바다로 향한다. 멀리서 먼동이 소달구지를 뒤쫓듯 따라온다. 시간이 오래된 기록영화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공동어장으로 향하는 길은 마차 바퀴가 뻘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단단하게 다져졌다. 언뜻 보기에 경운기를 이용해도 충분히 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확고하다.

″속도가 좀 느리긴 해도 소달구지가 최고지유″

″경운기나 트랙터를 사용하면 기름이 흘러나와 우리어장을 망칠 수 있구먼유″

초등학생인 딸아이 재롱 맛에 살아간다는 김문규(52)씨의 말이다. 한때는 마을 젊은이들이 '사용하기 편리하다'며 경운기를 채취작업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뻘에 기름이 흘러 어장을 죽이는 것을 보고 다시 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기계가 바닷물 염분에 젖어 자주 고장나는 것도 이유였다. 마을 사람들은 갯벌을 지키기 위해 경운기를 버렸다. 이 때문에 마을에서는 세 가구당 두 마리 꼴로 소를 키우고 있다.

″소는 한식구여유. 조금만 훈련시켜도 사람말을 잘 알아들어유.″

어촌계장 윤병일(51)씨의 말이다. 사실 대부분이 고령인 마을 주민들에게 낯선 기계보다 말 잘듣는 소가 휠씬 편리하다.

″소가 심성이 나쁘면 우마차 못해유. 첫 새끼 배었을 때부터 우마차를 끌지유. 하지만 둘째 새끼 가지면 소들도 귀신이 되어 일 안해유, 그럼 할 수 없이 '퇴출' 시키지유″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어촌계장의 말을 들으며 소를 한식구처럼 여기는 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심성을 엿볼 수 있었다.

바위마다 빼곡이 붙어 있는 석화에 물이 찰랑거리자 바지락 밭에서 한나절 동안 일을 하던 주민들이 비로소 고된 허리를 한껏 펴고 돌아갈 준비를 한다. 멀거니 서서 기다리던 소가 바지락 더미를 안고 오는 주인을 반기듯 고개를 끄덕인다. 뻘에 난 달구지 신작로를 타고 오는 주민들의 표정들이 흐뭇하다.

″어서 타유, 여기서 우마차 아니면 꼼짝을 못해유″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뻘에서 소달구지를 따라 잡으려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다 못한 김효곤(68)씨가 소꼬뚜레를 움켜쥐고 기자를 마차 위에 앉게 한다. 그러나 달구지가 개펄언덕을 넘어서며 우마차가 덜컹거리자 기자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바지락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장난스레

″아이구! 내 조개 다 깨져유″

라며 소리치자 소달구지 행렬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어난다.

<찾아가는 길>
웅도를 찾아 가려면 먼저 서산으로 가야한다. 지난 2000년 10월 개통된 서해대교 덕분에 서울에서 당진까지 단숨에 갈 수 있고 다시 서산까지 와서 잘 포장된 29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오면 대산읍이 나온다. 대산읍 궁전모텔을 지나 오지리 쪽으로 좌회전하여 3km를 가면 웅도리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여 산길을 따라 2.6km의 시멘트 길을 달리면 웅도로 들어서는 바닷길이 보인다. 웅도에 가려면 먼저 물때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하루 2번 물길이 열리지만 시간이 매일 바뀌기 때문이다. 자세한 안내는 어리굴젓 사장인 김종희씨(T 041-663-8898)에게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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