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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맨발로 찍은 행복 발자국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09:43

- 충남 대전시 장동 계족산 황톳길

 

황토흙이 묻은 맨발을 번쩍 들고 네 식구가 활짝 웃습니다. 신발에서 벗어난 발바닥들도 함께 웃는 것만 같습니다. 맨발로 걸으면 마음도 편하고 자유롭다는 부부는 아이들 손을 꼭 잡고 맨발로 걸어갑니다. 그들이 발바닥으로 꾹꾹 누른 발자국마다 가족의 행복이 솔솔 묻어납니다.

#맨발이 더 자연스러운 곳
조심스레 발을 내딛습니다. 신발에 갇혀 잠자고 있던 감각이 일제히 깨어나는 듯 온 신경이 발아래로 쏠립니다. 서늘하고 축축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생생합니다. 적당히 다져진 황토와 낙엽이 발바닥에 닿는 느낌은 그야말로 낯설고 신기합니다. 맨발로 길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요. 등산길에 부드러운 흙길을 잠깐 걷고 싶어도 용기가 필요하고, 고작해야 주변 공원에서 맨발지압로를 걷는 정도이지요. 맨발 코스가 산허리를 빙 둘러서 14 Km나 이어지는 이곳에서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오히려 어색해집니다. 맨발이 더 자연스러운 대전의 계족산 황톳길입니다.

처음부터 등산화를 벗었던 건 아닙니다. 계족산 입구에 줄지어선 배롱나무의 붉은 꽃도 바라보고 울창한 물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풀벌레 소리도 감상하며 다가오는 가을을 느끼고  있었지요. 황톳길은 장동 삼림욕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길의 절반은 맨발로 걸어갈 수 있는 황톳길이고 나머지는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을 위한 자갈길입니다. 곳곳에서 등산화를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띱니다. 그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산허리 둘레길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돌도 많아 보여서 아직은 신발을 벗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순하디 순한 황톳길
밀짚모자를 눌러쓴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길을 오릅니다. 윤영구·정정애씨입니다. 아빠 손을 잡은 7살 성식이는 맨발로 뛰어다니고 4살 지호는 맨발로 잘 걷다가 돌이라도 밟으면 금방 엄마 품에 안깁니다. 아빠는 가방을 메고 식구들 신발도 잔뜩 들었습니다. “맨발로 걸으면 발이 편해서인지 마음도 편하고 자유로워져요.” 맨발로 걷는 느낌을 이야기하는 부인 정정애씨의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가족의 모습이 예뻐서 사진을 부탁했더니 황토흙이 묻은 맨발을 번쩍 들고 네 식구가 활짝 웃습니다. 그들이 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발바닥으로 꾹꾹 누른 발자국마다 가족의 행복이 묻어나는 듯합니다. 

계족산의 산허리를 빙 돌아가는 둘레길에 다다르자, 맨발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맨발 걷기를 위해 6년째 황토를 부어 만들어 온 황톳길은 잔돌이나 나무뿌리도 없이 순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렇게 꼬박 3~4 시간을 걸어야 하는 코스이지만 중간 중간에 내려오는 길도 많아서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들도 부담없이 황톳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주황색 길은 푸른 숲과 어우러지고,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모,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지긋하게 나이를 먹은 노부부가 맨발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그대로 아름다운 풍경을 이룹니다.

# 맨발의 자유로움이여
양말과 신발을 벗어들었습니다. 맨발의 첫 느낌은 말 그대로 자유로움입니다. 양말과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동시에 구속했던 모양입니다. 아무것도 옥죄지 않자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발가락은 제각각 방향으로 뻗어 가고 발바닥은 바닥에 더욱 밀착하면서 잠자고 있던 감각들을 깨우기 시작합니다. 마른 황토와 축축한 황토의 질감을 미세하게 구분해내고 땅에 떨어진 낙엽의 감촉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아플 것도 다칠 것도 없는 길에서 조심스럽던 발걸음은 점점 용감해집니다. 발가락들은 자유롭게 활개를 치고 발바닥은 모든 호기심을 동원하여 땅의 기운을 느낍니다.

순환로 곳곳에 설치된 미술 작품도 눈길을 끕니다. 인생과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 저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숲과 어우러집니다. “좋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도 설치미술인가 봅니다. 나도 모르게 “좋다”를 연발합니다. 눈앞에는 푸른 숲이 펼쳐지고 바람은 더없이 상쾌합니다.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도 맨발로 걷는 사람들끼리는 묘한 연대감을 느낍니다. 쉼터에서 막걸리를 한 잔 하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같은 길을 맨발로 함께 간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친해지고 너그러워집니다. 더군다나 함께 동행하는 가족이나 친구들과는 동질감이나 공감대가 더욱 강해질 수밖에요.

# 함께 만드는 맨발의 행복
앞에 가는 연인이 가는 내내 손을 꼭 잡고 걸어갑니다. 마주 잡은 손을 흔들기도 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뒷모습이 황톳길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결혼 한지 2년 되었다는 윤상훈, 송치문 부부입니다. 워낙 산을 싫어해서 오기 전에는 툴툴거렸다는 부인 송치문 씨는 정말 오기 잘했다며 남편의 손을 꼬옥 잡습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도 재충전하고 부부간의 사랑도 더욱 돈독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는 그래서인지 아이들 손을 잡고 가는 가족들이 가장 부럽다고 합니다. 신혼부부거나,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거나, 노부부거나 가족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이 황톳길의 특별한 매력인 것 같습니다.

신발을 벗기 전에는 몰랐는데 ‘맨발로 걷는 일’은 생각보다 놀라웠습니다. 발의 자유 그것은 곧 몸과 마음의 자유로 퍼져갔습니다. 발이 편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호흡도 같이 깊어집니다. 얽매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자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가을, 가족과 함께 맨발로 황톳길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요.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가족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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