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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의 헌화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2. 15:50

 

시골에서 자란 탓에 분주한 일상에서도 문득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소리에 몰입하곤 한다. 천장에서 쥐들이 난리 칠때마다 이리저리 쥐똥 굴러다니는 소리, 일나간 어미소를 찾는 송아지 울음소리, 밥먹으라 악쓰시던 어머니 소리등. 모두 기억 한편에 자리잡은 아득한 소리다. 그 중에서도 이 삭막한 대도시에서 가끔 들을 수 있는 까치 소리가 나는 좋다.

시골 어른들은 유달리 까치소리를 좋아했다. 마을 들머리 논 옆에 서 있던 커다란 미루나무에 까치가 날아들어 아침을 여는 날이면 어른들은 어린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짓곤 했다. 이런날 찾는 이 없어 저녁 무렵까지 눈깔사탕 하나 안생겨도 하루종일 설레임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까치 소리를 들으면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나 하고 괜히 가슴이 설레인다.

경칩을 하루 앞둔 지난 3월 5일 국회에서 벌어진 '쥐잡는 까치'의 출현은 잠시나마 어릴적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정겨운 쥐소리와 까치소리를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국회출입 석간 사진기자의 하루는 이른 아침에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리는 당정회의를 챙기는 것부터 시작된다. '쥐잡는 까치'가 출현한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녘에 덜 깬 잠과 술기운을 툴툴 털면서 국회본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본관을 받치는 육중한 돌기둥 뒤에서 들리는 쥐소리와 까치소리. 순간 호기심은 기억 저편에 묻어둔 향수를 건드렸다. 까치발로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까치가 쥐를 쫒고 있었다.

쥐한테는 미안하지만 너무나 재미있었다. 쥐가 죽어라 도망치면 훌쩍 날아서 앞을 가로막는 까치. 다시 반대로 튀면 까치도 훌쩍 날아 반대편에서 떡하니. 바리바리 도망치던 쥐가 까치한테 덤벼보지만 역부족. 결국 인기척을 느낀 까치가 한눈을 파는 사이 서생원은 죽어라 줄행랑.
이 희한한 '동물의 왕국'을 보느라 당정회의는 물먹었다.(취재를 못했다) 할 수 없이 데스크에게 욕먹을 각오로 당정회의 대신 '쥐잡는 까치'사진을 송고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마감을 끝내고 나니 몸이 녹초가 됐다. 국회 기자실 소파에 몸을 기대니 저절로 잠이 스르륵. 그것도 잠시 모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아직도 그 까치를 거기가면 볼 수 있습니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직 신문이 나올 시간도 안됬고 설령 신문이 나와도 부원들 눈요기나 하라고 보낸 '쥐잡는 까치'사진이 신문에 실렸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문화일보 인터넷 홈페이지 프론트면에 실렸다는 방송국 '순간포착' 팀의 설명이다.
기자실로 배달된 문화일보 사회면에도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실렸다. 이 사진을 보고 한바탕 웃던 동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이 까치 김선규씨가 기르는 놈 맞지″
″옛날 국립묘지에 있었던 그 놈(까치)이지″
″그래 맞다. 그놈 같다. 아니 그놈 자식 같다.″
새삼 기자실의 화제가 6년전 현충원에서 취재했던 '까치의 헌화'로 옮겨졌다.

 

당시 장안에 화재가 됐던 '까치의 헌화'에 대해 미디어오늘 96년 7월 10일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난 6월 25일자 문화일보 1면에 까치 한 마리가 한 무명용사의 묘비에 헌화하고 있는 사진이 실려 언론계에 화제가 됐다. 까치가 헌화하는 희귀한 장면 때문에 사진조작 시비에 휘말리기도 한 이 보도사진은 그러나 별다른 사진거리를 찾지 못한 기자가 2시간 동안 까치를 쫓아다니다가 우연찮게 포착한 '노력'의 산물. 이 사진을 찍은 문화일보 김선규 기자가 6.25 46돌 스케치 사진을 찍어 오라는 지시를 받고 국립묘지에 도착한 것은 당일인 25일 오전. 그러나 참배객 한명 찾아볼 수 없는 등 마땅한 사진거리를 찾을 수 없어 고심하던중 마침 눈에 띈 것이 까치였다는 것. 풍경이라도 찍어보자는 생각에 까치들의 총총걸음 쫓기 2시간 여만에 이같은 희귀한 장면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김기자는 희귀한 장면 때문에 '꽃에 꿀을 바른 것 아니냐' '조련한 까치를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컴퓨터로 사진 조작한 것 같다'는 사진조작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까치의 헌화'와 '쥐잡는 까치'사진의 주인공은 모두 까치다. 흔하지 않은 일이기에 얼핏 두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자세히 사진을 들여다보면 두 사진은 모두 강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지난 96년에 발표된 '까치의 헌화'는 6.25발발 46돌이 지나면서 참배객의 발길이 끊긴 묘역을 까치가 참배객을 대신해 헌화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쓸쓸해지고 있는 한국전쟁 전사자 묘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또한 '쥐잡는 까치'의 사진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공해로 인한 생태계 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잡식성 조류인 까치가 독수리등 맹금류의 사냥감인 쥐를 공격하는 장면은 보기 드문 경우라는 것이 조류학계의 설명이다.

까치가 연출한 멋진 두 장면으로 내 별명이 '까치아빠'가 됐다. 나는 그 '까치아빠'란 별명이 결코 싫지는 않다. 최근 가족과 떨어져 있는 내 상황을 빗대어 불린 '기러기 아빠'보다는 휠씬 맘에 든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동요가사처럼 까치는 아직 오지 않은 설날을 미리 맞이함으로써 우리를 기쁨에 들뜨게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까치소리를 듣는 날이면 지금도 내게 무슨 좋은일이 생기려나 하는 설레임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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