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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해돋이와 해넘이 때 하늘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바쁘게 일에 묻혀 지내다가도 붉게 물든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일상의 시름이 노을속으로 사라진다. 이때 아름답게 채색된 하늘위에 긴 여운을 남기며 어디론가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있노라며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한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지금이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지만 한때 긴 여운을 남기며 날아가는 이 비행체가 UFO로 오인되는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지난 1995년 11월 20일 오후 5시 20분부터 10여분간 서울 북서쪽 상공에 높이 뜬 비행물체가 출현, 이를 목격한 시민들이 잇따라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이 비행물체의 정체를 밝혀달라고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또 상당수 목격자들은 아예 미확인비행체(UFO)로 단정, UFO가 틀림없는 것..
신문사진 무단사용 배상판결 보도사진 ``기자저작권`` 인정 신문에 실렸던 사진에 대해 사진기자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법원의 첫 결정이 나와 주목된다. 서울지법 민사91단독 황덕남 판사는 21일 문화일보 사진부 김선규 기자의 UFO 사진을 무단으로 전시하고 판매한 미도파백화점에 대해 김기자에게 7백만원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결정을 확정했다. 김기자는 미도파가 지난 1월 UFO연구단체인 한국 라엘리안 무브먼트와 함께 UFO 사진전시회를 열고 사진을 전시, 판매한데 대해 지난 2월 10일 서울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은 지난 6일 내려졌으며 14일 동안 양측의 이의제기가 없자 지난 21일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신문사진의 저작권과 관련 처음 내려진 법원 결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추석을 이틀 앞두고 장안에는 UFO출현이 화제가 되고 있다. 6일 본사 사진부 김선규기자가 경기도 가평군 설곡리에서 찍은 UFO사진과 함께 기사가 보도된뒤 본사에는 국내 각 방송사와 신문사등 언론사에서 사진을 취재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쇄도했다. 특히 이번 UFO사진이 신문기자의 카메라에 잡힌, 세계적으로 드문 일로 밝혀지자 AFP, 쿄도통신등 세계유명 통신사들이 앞다퉈 UFO사진을 전세계로 전송했다. 이와함께 한국에서 이번 사진처럼 분명한 UFO사진이 찍힌 것은 한국전쟁당시 미해군 소속 카메라 기자가 찍으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있는 일이기 때문에 취재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오전 11쯤 YTN을 시작으로 동아 중앙 한국일보등 각 언론사의 취재 요청이 잇따라 사진부는 이날 하루종일 북새통으 이루었으며, U..
필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았다. 필름의 12번째 컷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 문제의 부분을 확대해보았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이상한 비행체 같았다. 혹시 말로만 듣던 UFO? 그날 밤 10시 30분, 나는 한국우주과학연구소 조경철 박사의 연구실을 찾았다. 조박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정말 멋진 UFO 사진″이라면 흥분했다. 그러더니 주의깊게 사진 속의 물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비행체의 뒤에 나타난 검푸른 부분의 궤적은 비행체가 앞으로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내뿜는 분사체의 궤적이고 타원형의 물체 중앙에 있는 검은 부분은 비행체의 그림자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내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 이날 나는 마침 당직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며 나는 UF..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느낌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현장에서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피사체를 요리하며 셔터를 눌러왔건만, 남태평양의 작은 섬 뉴칼레도니아에서 나는 첫 순간부터 당혹스러웠다. 누군가 말했다. 죽기 전에 딱 한번의 여행이 허락된다면 남태평양의 천국, 뉴칼레도니아를 가고 싶다고. 하지만 난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적도도 내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기 전까지는. 뉴칼레도니아는 네게 생소한 곳이었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기에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에 열광한 사람들이 그곳에 간다는 사실 하나로 온갖 부러움을 표시할 때도 그저 무덤덤하게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출장 가는 ..
“굿모닝 프라하~!!”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자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신비스러운 고도다. 시내 곳곳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있어 작은 골목하나에도 중세의 향기가 배어있다. 프라하에는 시대를 망라한 수많은 중요한 건축물들이 즐비할 뿐만 아니라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과학 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유산이 있는 역사의 중심지이다. 체코에는 또한 카프카와 쿤데라를 비롯한 위대한 작가들도 많이있다. 문화유산을 볼 때에도 드보르작과 스메타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곡가를 낳은 나라 체코에는 지금도 음악이 번창하여 체코인이라면 누구나 음악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지금도 수년전 여행한 동유럽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바로 프라하다. 성 비타성당. 아름답기로 ..
슬로바키아는 우리나라의 절반 면적에 인구는 500만이 넘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입니다. 알프스의 줄기인 타트라 산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서 전 국토의 80% 이상이 해발 750m 이상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오고 겨울이 좀 긴 편인데 이곳의 집들의 지붕의 경사가 심한 편입니다. 슬로바키아는 우리의 기아차가 유럽시장 공략의 첨병이 될 동유럽공장 건설의 첫 삽을 뜬 나라이기도 합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비록 볼거리는 많지 않지만 차분한 도시 분위기로 그 어느 곳보다 여행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입니다. 아직 한국사람중에 체코슬로바키아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와 로 완전 2개의 나라로 갈라졌다.. 그것도 평화적으로...왜... 사유1. 1..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 된 도시의 하나로, 차분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 과거 공산 시절과 새롭게 밀려든 자본주의의 공존과 대조를 천천히 음미하며 하루 이틀 쉬어가기에는 좋은 도시다. 불가리아는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이지만 비옥한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알맞은 기후의 혜택을 받은 나라이다. 불가리아인의 조상은 원래 아시아 평원을 누리던 기마민족이었으나 이 비옥한 땅에 정착하면서 농업국으로의 터전을 굳혔다. 오랫동안 유럽 열강과 터키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78년에야 러시아의 힘으로 독립을 얻었다. 그래서 불가리아와 러시아와의 관계는 특별히 친밀하고 러시아의 16번째 공화국 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고대에는 트라키아인(人)의 식민지였다. 29년 로마에게 점령된 후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
루마니아를 방문할때 머리속을 떠나지 않은 이미지가 하나 있다. 바로 루마니에의 절대 권력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몰락장면이다. 1989년 12월 25일. 절대권력을 꿈꾸다 부인과 함께 헬기를 타고 망명하던 차우셰스쿠는 헬기 조종사의 배신으로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곧장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총살형 집행에 지원한 군인이 수십명이 넘어 100여발의 총알이 박힌채 AP통신을 통해 전송된 차우셰스쿠의 시신 사진은 사회주의 붕괴의 종지부를 찍는 상징적인 의미로 당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이 되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새벽 우리의 앙증맞은 티코 자동차가 많이 보인다. 루마니아를 방문하는 동안 머물렀던 영빈관 입구. 북한의 김일성과 상당히 절친한 사이였던 차우셰스크는 김일성의 주석궁을 보고 감명..
지난 2002년 박관용 국회의장과 함께 동유럽을 순방할때 사진을 뒤적여봅니다. 첫 출장지인 독일 그중에도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유명한 하이텔베르그와 포츠담 선언으로 귀에 익은 상소시에성의 사진들이 옛추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상수시 궁전은 베를린 교외의 포츠담시에 있는 프리드리히 대제의 여름 별장인데, 상수시(Sans Souci)는 프랑스말로 "근심없는(without cares)"이란 뜻이란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배경으로 네카강에서...이때만 해도 참 젊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