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빛으로 그린 세상/행복편지 (46)
빛으로 그린 세상
학교 간 언니를 기다리며 혼자 놀던 아이가 시멘트 틈 사이로 돋아난 친구들을 발견했습니다. “너네도 심심하니?” 2007/화천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먼 산에 동이 트자 동네 백구들이 이른 아침부터 온 들판을 신나게 뛰어다닌다. 투명한 아침햇살이 굽이굽이 산자락을 어루만지고, 나뭇가지마다 이슬 머금은 신록에도 햇빛이 고루 퍼진다. 밤새 잠들었던 대자연이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하늘아래 첫 동네, 그 곳에서 봄날의 아침은 그렇게 신명나게 찾아들었다. 2004/지리산 농평마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버들개지들입니다. 보송보송한 솜털에 빨간 수꽃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 눈 달린 털북숭이 도깨비 같습니다. 털북숭이 세 녀석이 다른 한 녀석을 두고 웅성거립니다. “제는 봄이 온줄 알고 먼저 외투를 벗었다가 동상이 걸려 눈이 삐뚤어졌대. “ 버들개지의 여린 솜털을 보며 자꾸 장난기가 발동하는 내 마음에도 봄이 왔나 봅니다. 2006/남한강
세상의 노란색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듯, 온통 노란 산수유꽃 천지입니다. 매화가 질 무렵이면, 골짜기, 농가, 마당 할 것 없이 마을은 수백 년 묵은 산수유나무로 노란 꽃대궐에 파묻히지요. 자연이 준비한 봄의 향연이 가장 먼저 열리는 이곳에서는 나무와 숲과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봄의 교향곡이 울려 퍼집니다. 그 속에서는 나 또한 풍경이 되어 봄으로 물들어갑니다. 2005/ 구례 산동마을
누구보다도 먼저 피어나 봄을 깨우는 할미꽃. 자줏빛 벨벳 꽃잎과 노란 꽃술이 화려하기 그지없건만, 뜨거운 정열 가슴에 품고도 부스스한 솜털 속에 몸을 감춘 채 하염없이 땅만 바라보는 그 애잔한 아름다움이여……. 2004/ 전남 장흥
푸른 바다가 내려 보이는 산비탈 다랭이밭, 오랜만에 밭 갈러 나온 소는 농부의 호령에도 아랑곳없이 딴청입니다. “허어 이놈이~” 화가 날만도 하건만, 늙은 농부는 고삐를 늦추고 한동안 기다려줍니다.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남녘 끝자락, 봄은 농부의 넉넉한 마음에서 먼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2003/ 남해도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 잠깐 들렀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신 어머니는 최근에 허리수술을 받아 아직 불편하신 몸인데도 호미를 들고 밭두렁으로 나가셨습니다. 들판은 꽃샘추위로 스산했습니다. 허리에 무리가 가니 가만히 계시라는 자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기어코 소쿠리 가득 냉이를 캐서 바리바리 싸주셨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나온 냉이처럼 모질게 살아오신 어머니. 당신 몸 부서지는 것 생각 않고 자식들 하나라도 더 먹이시려고……. 아내가 끓여준 냉이 된장국을 먹으며, 냉이보다 더 질긴 어머니의 사랑에 목이 메었습니다. 2004/ 경기 화성
소 닭 보듯 한다고 했나요. 남의 밥그릇을 기웃거려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 송아지의 여유가 부럽습니다. 2007/ 경북 상주
“요것이 뭔지 아는가, 감태여! 감태!” 고된 허리에 봄향기를 가득 싣은 소쿠리를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두 아낙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파래 보다 가는 감태 채취로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바다에 감사하는 맘을 갖고 살아간답니다. 푸른 바다에서 전해지는 민초들의 봄향기에 새삼 하늘이 베풀어 주는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5/전남 완도